1. 구독경제 속의 죽음: 자동결제는 멈추지 않는다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네이버플러스, 애플 원, 클라우드 저장소…우리는 하루에도 몇 개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금액은 결코 만만치 않다. 더불어 내가 구동 중인 서비스를 인식하지 못하고 방치하기 쉽다. 만약 이용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면, 이 구독은 어떻게 처리될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구독 서비스는 이용자의 사망과 무관하게 자동 결제를 계속 진행한다. “죽어도 계속 돈이 빠져나가는 시스템”은 실제 유족에게 현실적인 피해를 준다. 유족이 사망자의 휴대폰이나 이메일에 접근하지 못하면, 해지를 위한 로그인조차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결국 수개월 동안 불필요한 결제금이 자동으로 빠져나가거나, 해외 서비스의 경우 환불조차 거절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2. 플랫폼 약관 vs 유족의 권리: 누구에게 해지 권한이 있는가?
많은 글로벌 플랫폼들은 사망자 계정에 대한 특별한 조항을 약관에 두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통해 사망 시 계정 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게 해뒀고, 애플은 ‘디지털 유산 연락처(legacy contact)’ 제도를 도입해 사망 후 접근을 허용한다. 하지만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프리미엄 같은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의 대부분은 별도 지침이 없다. 유족이 고객센터에 문의하더라도, 법정상속인 증명서, 사망진단서, 신분증 등 복잡한 서류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계정 소유주 본인이 아니면 해지가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망자의 재산 보호가 아닌, 플랫폼의 수익 보호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약관의 한계를 보여준다.
3. 국내외 법제도의 사각지대: 디지털 자동결제는 ‘재산’인가?
한국 법상 사망자의 유산은 상속인에게 귀속되지만 넷플릭스 구독권이나 iCloud 유료 저장공간, 멜론 정기결제는 상속의 대상일까? 문제는 이들 서비스가 실질적으로는 소유권이 아닌 이용권(license) 이라는 점이다. 즉, 재산이 아닌 ‘비재산적 권리’로 분류되어 상속 대상이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유족이 정당한 상속자임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해지를 요구할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뜻이다. 해외에서도 이 문제는 논란이 되고 있으며, 독일·미국 등 일부 국가는 디지털 유산 관련 별도 입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동결제 구독서비스에 대한 구체적 제도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4. 사망자의 지출을 막기 위한 유족의 현실적 대응법
사망자의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려면, 유족은 먼저 계정 접근 권한 확보가 필요하다. 구글이나 애플처럼 사전 설정 기능(Inactive Account Manager, Legacy Contact)이 있다면 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설정이 없다면, 결제 출처(카드사 또는 계좌)를 파악해 직접 정지 또는 차단 요청을 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또한 유족 입장에서는 사망자 명의의 자동이체나 소액결제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미리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는 결국 사전 예방 차원의 디지털 유언(Digital Will)을 작성하고, 구독 서비스 목록 + 계정 아이디 + 해지 절차를 명시해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제는 ‘디지털 소비’ 또한 생전 정리 대상이 된다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5.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과제: 죽음 이후에도 과금되는 시스템
이제 ‘디지털 사후 처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특히 자동결제를 기반으로 하는 구독경제 사회에서는, 죽음조차 시스템의 예외가 되지 않는다. 사망자의 계정을 계속해서 과금하는 행위는 사적 이익 추구를 넘어, 사회적 책임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플랫폼은 계정 이용자의 사망 시 해지 및 환불 기준, 유족의 대응 권한, 데이터 처리 방식을 명확히 공개해야 하며, 국가 차원에서도 사망자 명의의 자동결제 방지를 위한 금융기관 연계 제도화가 시급하다. 더 이상 ‘죽었는데도 결제가 된다’는 현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디지털 시대의 죽음에는, 새로운 법과 윤리가 필요하다.
'지금 나의 관심은... > 디지털 유산 관리와 사후 데이터 보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망 후 49일, 100일, 1년… 디지털 유산 정리 타임라인 가이드 (0) | 2025.04.26 |
---|---|
사망자의 데이터를 AI가 학습해도 될까? 사후 AI 재현의 윤리와 법 (0) | 2025.04.26 |
삼성 One UI 7의 유산 관리자 기능, 아이폰과 뭐가 다를까? (0) | 2025.04.25 |
국회는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발의된 법안으로 본 사후 데이터 보호의 미래 (0) | 2025.04.24 |
사망자의 카카오톡, 가족이 읽을 수 있을까? – 디지털 메신저 접근의 법과 현실 (0) | 2025.04.22 |
디지털 유산 정리 대행업: ‘사이버 장례지도사’의 탄생 (0) | 2025.04.22 |
죽음조차 온라인으로? 디지털 장례식, 어디까지 왔나 (0) | 2025.04.22 |
상속세는 냈는데 접근은 안 돼? – 디지털 자산 상속의 과세와 현실 괴리 (0) | 2025.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