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지털 유산 관리와 사후 데이터 보호

디지털 유산 정리 대행업: ‘사이버 장례지도사’의 탄생

by mindgrov 2025. 4. 22.
반응형

1. 디지털 유산 누가 정리해줄까? 

한 사람의 죽음은 더 이상 물리적 유산만이 아니다. 스마트폰 속 사진, 이메일, 유튜브 계정, 비트코인 지갑, 심지어는 게임 캐릭터까지 모두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그 수많은 데이터들을 누가,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며 최근 등장한 것이 바로 ‘디지털 유산 정리 대행업’, 이른바 **‘사이버 장례지도사’**다.

사실 유족 입장에서는 고인의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는 일은 감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다. 접속조차 불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각종 플랫폼의 접근 절차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 일부 유족은 정작 고인이 어떤 계정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흔하다. 때문에 이러한 현실 속에서 등장한 사이버 장례지도사는 유족을 대신해 고인의 온라인 계정을 정리하고, 파일과 메시지를 분류하며, 데이터 삭제나 보관을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장례 전문가다. 
이들은 유족을 대신해 고인의 온라인 계정을 정리하고, 남겨진 파일과 메시지를 정리하며, 필요시에는 데이터 삭제 요청까지 대행한다. 디지털 기술과 심리적 배려가 동시에 필요한 이 업무는 기존 장례업과 IT 지식을 결합한 신직업군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미국, 독일 등에서는 이미 정식 직업군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IT 기반 장례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 중이다.


2.  실제 업무 범위와 서비스 방식

사이버 장례지도사의 업무는 단순한 ‘계정 삭제’에 그치지 않는다. 먼저 유족의 의뢰를 받으면, 고인의 사용 플랫폼을 조사한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 계정은 물론, 클라우드 저장소, 암호화폐 지갑, 개인 블로그, 유료 구독 서비스까지 포괄한다.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걸려 있는 잠금장치나 암호 해제에 대한 요청이 많다. 미국에서는 ‘Digital Estate Organizer’라는 직책으로, 유족 대신 수십 개 계정의 삭제 절차를 진행하며 법적 서류를 첨부해 플랫폼 측에 요청하는 전문 서비스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제도적 틀이 부족하지만, 몇몇 스타트업이 디지털 유산 백업 서비스, 온라인 분류표 작성 도우미, 사망자 계정 추적 시스템 등을 자체 개발해 유족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3. 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이들: 제도화의 필요성

그러나 사이버 장례지도사의 업무는 여전히 법적 불안정성 속에 놓여 있다. 고인의 SNS 계정이나 이메일은 대부분 본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닌 플랫폼의 일시적 사용권으로 간주되기에, 타인이 임의로 접근하거나 삭제할 경우 불법 침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사망자의 계정을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삭제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엄격한 유족 증빙 절차와 사망 진단서, 법정 상속자 증명이 요구된다. 그러나 사이버 장례지도사는 유족의 위임장을 받았더라도, 법적 권한 없이 개인정보 접근을 시도하면 위법 소지가 생길 수 있다.
국내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이 디지털 유산 처리에 대해 직접적인 가이드를 제시하지 않고 있어, 이들의 활동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할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4. 1인 가구와 비자발적 디지털 유산

앞으로 사이버 장례지도사의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 배경에는 1인 가구의 증가, 비혼 인구의 확산, 그리고 돌봄 없는 죽음이라는 사회적 구조 변화가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사망 전 유언이나 디지털 유산 정리를 미처 하지 못하고, 가족조차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때 남겨진 스마트폰, 노트북, SNS 계정들은 그 자체로 방치되거나 해킹, 사칭, 유출 등의 위험에 노출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디지털 유산 정리 대행업은 단순 서비스가 아니라, 고인의 존엄을 지켜주는 최후의 예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디지털 유품 정리사’라는 공식 명칭이 생겼고, 공인 자격증과 교육 과정이 마련되었으며, 정부 지침까지 수립되고 있다.


5. 사이버 장례지도사 직업의 제도화와 전망

앞으로 사이버 장례지도사는 단순한 신직업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들의 활동을 공공 플랫폼과 연계하고, 법률 상담·보안 교육을 병행한 전문 자격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과 협력해 사망자 데이터 처리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디지털 유산 처리 절차를 표준화한다면 유족과 플랫폼, 정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디지털 유산을 다루는 이들의 손끝에서 고인의 흔적은 조심스럽게 지워지거나, 따뜻하게 남겨진다. 사이버 장례지도사라는 이름의 이 조용한 직업은, 미래 사회에서 가장 인간적인 업무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디지털 유산 정리 대행업: ‘사이버 장례지도사’의 탄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