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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관리와 사후 데이터 보호

독일 법원 판례로 본 ‘페이스북 상속권'

by info-search-blog1 2025. 4. 13.

⚖️ 1. 독일 연방대법원 판결 개요 – 페이스북 계정은 상속 대상인가?

2012년, 독일 베를린에서 15세 소녀가 지하철 선로에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의 부모는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살인지 사고인지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딸이 사용하던 페이스북 계정에 접근하고자 했다. 해당 계정에는 친구들과 나눈 대화 기록, 상태 업데이트, 사진 등 딸의 마지막 삶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스북 측은 사용자의 사망 이후에도 계정의 개인정보 보호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계정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

유족은 이 결정에 반발하며 페이스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디지털 계정도 일반적인 재산처럼 상속 대상이 되어야 하며, 자녀의 법정 상속인으로서 해당 정보를 열람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페이스북 측은 자사의 이용자 약관 및 독일의 통신비밀보호법(§88 TKG) 등을 근거로, 사망자의 계정 열람이 사생활 침해 및 제3자 권리 침해 소지가 있다고 맞섰다.

이 사건은 1심과 2심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오며 큰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특히 2심에서는 프라이버시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족의 접근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최종적으로 **2018년 7월 12일, 독일 연방대법원(Bundesgerichtshof)**은 유족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해당 페이스북 계정이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넘어서, 사용자와 플랫폼 간의 계약 관계에서 발생한 디지털 자산의 일종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보았다.

판결문에서 법원은 “디지털 콘텐츠는 전통적인 형태의 일기장이나 편지와 동일한 사적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이며, 이는 민법상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즉, 해당 계정에 저장된 콘텐츠가 비록 재산적 가치를 지니지 않더라도, 사망자의 인격적·감정적 유산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적 상속 대상이 된다는 해석이다.

이 판결은 유럽 내에서 최초로 디지털 자산의 상속 가능성을 민법 체계 안에서 명문화한 최고법원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이후 독일은 물론 유럽 각국에서도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검토가 활발히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플랫폼 사업자와 사용자의 권리 관계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 법원 판례로 본 ‘페이스북 상속권'

📜 2. 디지털 유산의 민법적 해석 – 계정은 상속 재산인가?

독일 민법(Bürgerliches Gesetzbuch, BGB)은 전통적으로 **상속 재산(Erbmasse)**의 범위에 대해 명확히 열거하지 않고, 일반적인 규정에 따라 사망자가 생전에 보유한 모든 권리와 의무는 상속인에게 포괄적으로 이전된다고 규정한다(§1922 BGB). 여기서 말하는 재산에는 부동산, 현금, 주식 등 물리적 자산뿐 아니라, 채권, 계약상의 권리, 지적 재산권 등 무형 자산도 포함된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 특히 소셜미디어 계정이나 이메일 계정과 같은 온라인 서비스 이용 권리는 여전히 명시적인 입법적 정의가 부재한 영역이다.

그러나 2018년 독일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해석의 공백을 메우는 선도적 법리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페이스북 계정에 대해 “사용자와 플랫폼 사이의 사용 계약(Nutzungsvertrag)에 따른 권리”로 보았고, 이는 민법상 일반 채권과 마찬가지로 상속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즉, 계정은 단순한 로그인 정보나 기술적 접근 수단이 아니라, 법적으로 보호되는 계약상의 재산권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생성한 콘텐츠—메시지, 사진, 댓글, 게시글 등—이 단순한 ‘정보’ 그 이상으로, 사적 의사소통과 감정적 표현의 수단이며, 사용자의 디지털 정체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법리적 인식에 기초한다. 법원은 이러한 디지털 콘텐츠가 일기나 편지와 같은 사적 문서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는다고 판단했으며, 그로 인해 감정적 가치와 인격적 요소를 포함한 유산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판결은 개인정보 보호법 및 통신비밀보호법 등과의 법익 충돌 문제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사망자의 개인정보 보호는 사망과 동시에 본질적으로 소멸하며, 계정 내 제3자의 개인정보 보호 문제는 일반적인 상속 절차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특별히 디지털 자산만 예외로 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법원의 입장은 디지털 자산을 **'법적 상속 재산으로서의 지위'**에 포함시키는 중요한 선례를 마련했으며, 이후 독일 내 여러 판례와 정책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플랫폼 사업자와 사용자의 권리 관계를 ‘민법적 계약 구조’로 해석함으로써, 사망 후 계정의 법적 귀속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점이 평가된다.

 

🛡️ 3. 프라이버시 vs 상속권 – 페이스북의 반론과 법원의 판단

페이스북은 이 판결 과정에서 사용자와의 계약이 비공개 통신의 보호를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망자의 친구들과의 대화 내용이 포함된 계정을 유족이 열람할 경우, 제3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독일 연방대법원은 사망자의 프라이버시는 사망과 함께 소멸한다는 기존 법리를 따랐다. 즉, 살아있는 사용자라면 개인정보 보호가 최우선이지만, 사망자의 정보는 유족의 정당한 법적 권리 아래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족이 사망자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사고 경위를 파악할 목적이라면 이익의 균형상 상속권이 우선된다고 보았다.

또한 법원은 제3자의 개인정보 문제도 계정 열람 후 정보 분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며, 이는 민감 정보가 포함된 종이 일기장을 상속인이 열람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해석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로써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보호와 상속인의 접근권 사이의 법적 경계가 하나의 판례로 정립되었다.

 

🌍 4. 국제적 시사점 – 유럽 및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독일 대법원의 이 판결은 유럽 연합 전체의 디지털 유산 논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GDPR(유럽 일반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사망자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개별 국가의 법해석에 맡기고 있었는데, 독일 판결은 이를 상속법의 적용 대상으로 명확히 포함시킨 선례로 평가받는다.

그 이후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디지털 자산을 유언장이나 법정 상속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관련 법률을 정비하거나 검토 중에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도 유사한 소송이 이어졌고, 대체로 독일 판례에 영향을 받은 결정이 내려졌다.

한편, 한국은 현재 디지털 유산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다. 대부분의 SNS나 메신저 계정은 이용 약관에 따라 임의적으로 삭제되거나, 유족의 요청에 따라 제한적으로 조치되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유족이 사망자의 기록을 보존하고자 하거나, 법적 절차를 위해 필요로 할 때 명확한 기준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독일의 이 판례는 한국에도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1. 디지털 자산도 법적으로 상속 가능한 계약적 자산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2. 사망자의 프라이버시와 상속인의 권리 중 어느 것이 우선되는가?
  3.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도 디지털 유산을 상속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체계 안에서 통합적으로 논의할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