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지털 유산 관리와 사후 데이터 보호

미국의 RUFADAA: 디지털 유산법의 대표 사례

by info-search-blog1 2025. 4. 13.

🇺🇸 1. RUFADAA란 무엇인가? – 미국 디지털 유산법의 통일 모델 등장

21세기 들어 디지털 기술이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인간이 남기는 ‘유산’의 개념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부동산, 예금, 유가증권 등 유형의 자산이 상속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소셜 미디어 계정, 이메일, 클라우드 문서, 온라인 자산까지도 법적 상속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지만 개인에게 중요한 가치와 기록을 담고 있는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s)**은, 사망 후에도 관리와 보호가 필요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먼저 디지털 유산 상속의 법제화에 나섰다. 그 대표적인 법률이 바로 **‘RUFADAA(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다. 이 법은 2015년 **미국통일법률위원회(Uniform Law Commission, ULC)**에 의해 초안이 제정되었으며, 디지털 자산에 대한 통일된 상속 기준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RUFADAA의 주요 목적은 **사망자 또는 무능력자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법적으로 정당한 권리를 가진 자(수탁자, Fiduciary)**가 해당 자산에 접근하고, 보존하거나 폐기하는 등의 조치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수탁자는 유언장에 의해 지명된 유언 집행자일 수도 있고, 법원이 지정한 법정 대리인 또는 후견인일 수도 있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는 주마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접근과 상속 기준이 달라, 유족과 서비스 제공자 간에 법적 해석의 차이로 인한 혼란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주는 유족의 요청만으로 계정 접근을 허용했지만, 다른 주에서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이를 엄격히 금지했다. 심지어 같은 플랫폼이더라도 사용자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정책을 적용해야 했다.

RUFADAA는 이러한 주(州) 단위 규제의 파편화를 해결하기 위한 통일적 모델로 기능하며, 각 주가 이를 기반으로 자체 법률을 채택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2025년 현재 기준으로 미국의 50개 주 중 48개 주 이상이 RUFADAA를 채택하거나 유사 법률을 제정하여 디지털 유산 상속 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이로써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인 디지털 자산 상속 시스템을 갖춘 국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RUFADAA는 단순한 상속법이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프라이버시 해석, 그리고 정보에 대한 통제권과 법적 권리의 경계 재정립이라는 더 넓은 법적·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는 법률이다. 그만큼 각국의 법 제도와 디지털 플랫폼 운영 원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 2. 법률의 핵심 구조 – 수탁자의 권한과 이용자의 사전 동의

RUFADAA는 단순히 유족이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의 사전 동의와 수탁자의 법적 지위를 엄격히 규정한다. 이 구조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상속인의 접근권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조항은 다음과 같다:

  1. 온라인 도구 우선 원칙: 구글, 페이스북 등 플랫폼 제공자가 제공하는 사전 설정 기능(예: 사후 계정 관리자, 유산 연락처)을 통해 고인이 생전에 설정한 의사가 최우선으로 적용된다.
  2. 법적 문서에 따른 지시: 유언장이나 생전 위임장 등 법적 문서에서 특정 계정에 대한 접근을 명시한 경우, 수탁자가 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진다.
  3. 기본 이용약관 적용: 위 두 가지가 모두 없는 경우, 서비스 제공자의 일반 약관에 따라 처리된다. 즉, 사망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열람할 수는 없다.

이 구조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접근을 단순한 상속의 개념을 넘어서 ‘정보의 통제권’이라는 개인정보 보호 원칙과 연결짓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RUFADAA: 디지털 유산법의 대표 사례



🧑‍⚖️ 3. RUFADAA 적용 사례 – 현실에서의 쟁점과 해석

RUFADAA가 적용된 실제 사례 중 대표적인 사건은 사망자의 페이스북 계정에 접근하려던 유족과 메타사 간의 법적 분쟁이다. 해당 사건에서 유족은 사망자의 계정을 복원하거나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페이스북 측은 명확한 사전 설정이 없었다며 접근을 거부했다. 이후 법원은 RUFADAA를 근거로 유족에게 제한적 접근 권한을 허용했다.

하지만 법 적용에 있어 다음과 같은 쟁점이 존재한다:

  • 정보 공개의 범위: 수탁자가 이메일 본문까지 열람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메타 정보(제목, 발신인 등)만 확인할 수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 이용자의 사전 동의 여부: 디지털 자산에 대한 명시적 동의가 없으면, RUFADAA도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전 설정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 서비스 제공자의 협조 의무: 일부 플랫폼은 여전히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접근 요청을 지연하거나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따라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처럼 RUFADAA는 디지털 유산 접근의 기준을 제공하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 서비스 약관, 사생활 보호, 기술적 한계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다.

 

🌐 4. RUFADAA의 의의와 한국에 주는 시사점

RUFADAA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유산 접근에 대해 제도적 틀을 명확하게 제시한 대표적 모델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유족의 권리를 동시에 고려한 이 균형적 접근은, 디지털 생태계의 윤리적 문제 해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례로 여겨진다.

한국의 경우 아직 디지털 유산 관련 법률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 서비스 약관에 따라 처리되거나 민법상 상속 규정을 유추 적용하는 수준이다. 이로 인해 유족이 고인의 계정에 접근하려 할 때, 정확한 법적 기준 없이 플랫폼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RUFADAA는 한국에도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진다:

  1. 사전 설정 기능의 법제화: 서비스 제공자들이 이용자에게 사후 계정 설정을 의무적으로 안내하거나, 법적 유효성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2. 디지털 자산 상속 법제 정비: 민법상 상속의 범위에 디지털 자산을 명시적으로 포함시키고, 접근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
  3. 수탁자 보호 조항 마련: 디지털 자산을 위임받은 자가 임무를 수행할 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의 사망은 오프라인 죽음 이상의 법적 과제를 남긴다. RUFADAA는 그 해답 중 하나이며, 한국 역시 점차 현실을 반영한 제도적 논의와 입법이 시급하다.